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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한글처럼 동화책으로 가르쳐라. 본문
영어도 한글처럼 동화책으로 가르쳐라
이 현 <목원대학교 교수>
흔히 외국어를 처음 배운다고 생각하면 으레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조기교육이 열풍으로 번지면서 영어학원도 모자라서 영어유치원이 마구잡이로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꿔 아이에게 처음으로 한국어를 알려주려고 할 때 어떻게 했는지 따져보자. 우리말을 배우게 하겠다고 학원에 보낼 생각을 하는 엄마는 아무도 없다. 대신 어느 엄마든지 책을 읽어주고, 간단한 동화를 같이 보면서 한글을 가르친다. 그런데 왜 유독 영어는 그렇게 가르치려고 생각하지 못할까?
언어는 모두 똑같은 시스템(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서 아이의 모국어는 초등학교 언어라는 결과가 나와 있다. 초등학교 언어라면 말하고, 듣고, 읽고, 쓰기의 과정이 완성되는 단계다. 그러므로 한글을 가르치듯이 영어를 가르치면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모국어처럼 영어를 받아들인다. 나는 진아를 통해 이러한 과정을 실제로 경험했다.
진아가 처음 파리에 갔을 때 진아의 한국어 실력은 그저 짧은 단어로 말하기가 전부 였다. 읽기와 쓰기는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외국에 도착했다. 한국말만 엉망인 것이 아니라 불어는 아예 한 마디도 못하는 아이에게 유치원 선생님과 도서관 선생님이 날마다 진아에게 2시간씩 불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설명하면서 불어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 결과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말을 들어보면 프랑스 아이라고 생각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정도였다. 정말 놀라운 결과였다. 나와는 오로지 한국말만 쓰던 아이가 6개월 만에 불어를 완벽하게 익히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읽고 쓰는 것도 프랑스식 사고로 전개된다는 것을 알았다. 단어 공부가 아니라 책을 통해서 익힌 언어였기에 사고체계까지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외국어로 된 동화책을 읽어줄 때 아이에게 번역은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문장을 읽고 문장 안의 단어를 그림으로 이해하면 바로 이미지와 함께 단어가 새겨지는 것이다. 어른의 외국어 습득이 아이보다 느린 까닭은 매번 번역이라는 단계를 거쳐 듣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고체계다. 생각한 바를 말로 옮기고 읽고 쓰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말을 모르는 진아를 붙들고 프랑스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했다. 동화책을 읽어 주고 설명하며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말하기, 듣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아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더 빨랐다. 겨우 두 달 만에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받아 쓰기도 대충 비슷하게 했다.
말은 바뀌었는데 아이에게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고 체계였다. 말은 바뀌었지만 생각하는 방법은 여전히 프랑스식으로 이유를 먼저 생각하고 결론을 내며 그 결론을 합리화했다. 외국어든 한국어든 글자와 말만을 알려주려고 동화책을 읽어줘서는 안 된다. 사고 체계를 알려주기 위해 책을 읽어줘야 한다.
지금 난 둘째 시완이에게 외국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한국어 동화책 읽기를 독립해서 스스로 읽고 생각하므로 이제 외국어 책을 접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일단 책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는 아이다보니 시완이에게 있어 외국어 책은 그 책이 영어로 되어 있던 불어로 되어 있든 상관없이 그저 똑같은 책으로 볼거리가 많은 궁금한 세계일뿐이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서 20분 정도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처음 한국말 배울 때보다도 훨씬 빨리 수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미 한국어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하고 책 세상을 많이 접한 후라 그런지 영어라는 외국어도 그저 또 다른 경험의 세계로 느끼는 것 같다.
동화책으로 영어를 익히니 다른 책에서 아는 단어가 나오면 먼저 읽었던 책의 문장을 외우고 비교하면서 즐거워한다.
나는 오랫동안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수많은 학원에서 hello, hi류를 배웠지만 정작 쓸모는 없었다. 비싼 학원비 내면서 익힌 관용구와 문장은 그저 몇 분이면 바닥나는 수준이었다. 난 내가 경험한 그런 실수를 아이가 똑같이 겪도록 하지 않으려고 오늘도 동화책을 읽어주며 영어공부를 시킨다.
많은 엄마들이 발음은 어떻게 하냐며 난감해하는데 아이에게 한글 동화책을 사투리로 읽어주었다고 아이가 사투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듯 못하는 발음이라고 괜찮다. 발음이 나빠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할 뿐이다. 그러니 발음보다는 우선은 영어가 뭔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려주어야 한다.
도서관에 가면 한쪽 서가에 영어 동화책이 있다.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그래도 '이것만 다 봐도 괜찮지'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면 유아부터 초등중등용으로 제법 잘 갖춰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영어책 역시 처음에는 책의 권수에 연연해하지 말고 단 한 권을 보더라도 몇 번씩 되풀이해서 볼 것을 권한다. 처음 한국어 동화책을 읽어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영어 동화책은 테이프와 함께 있는 것이 많으니 테이프를 통해서 아이의 또 다른 영어의 귀를 밝게 해주자. 도서관의 영어책을 많이 활용하는 순간 더 많은 영어책과CD, 테이프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이현 지음/기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