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누구로 정의하며 사나?
정말로 나는 나를 누구로 정의하나?
세상에 판단되어지는 나인가 아니면 정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로 사나?
정말로 나는 누구로 정의하면서 정말로 그 컨셉으로 무장하며 사나?
정말로 그것이 진정 내가 맞나?
세상의 판단 기준에 의해서 나를 보면 한 마디로 난 형편없게 보인다.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내 내면이 너무나 약함을 그 이유로 보고 있다.
그 내면의 약함이 두려움을 만들고 부정을 만들고 결국 나란 사람의 정의를 무가치하게 만든다.
이것이 음부의 권세처럼 나를 무섭게 공격하고 나를 먹을 수 있는 권세라는 것에 긴장하게 된다.
왜 하나님은 내게 예수를 보내시고 성령님을 보내셨나?
나는 나를 이렇게 형편없는 나로 정의하며 사는데, 왜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나?
하나님이 보시는 나가 누구길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왜 죽으셨나?
왜?
왜 란 말인가?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진리)
하나님께서 원래 원하신 그 인간의 원형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만드시고자 하시는 그 원형의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난 나는 그 원형의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땅자체가 아담의 계약이 흐르는 음부의 권세의 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땅에 먼지처럼 사라지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절대 나는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시는 그 원형의 아들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너무나 안타까워 하시고
본래 자신이 만드시고자 하신 그 원형의 아들을 회복하시고자 이 땅에 예수로 나타나셨다.
정말로 하나님이 가지신 그 단 하나의 유일한 심보가 얼마나 강력하신지요.!!!
정말로 그 원형의 아들을 만드시고자 하시는 그 의지가 얼마나 깊은지요.!!!
하나님은 부모님처럼 자신과 같은 생명을 가진 아들을 원했다.
하나님은 자신을 닮은 형상을 가진 아들을 원했다.
그 핵심의 말씀이 요한복음 10장 10절의 말씀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하나님께서 정말로 만드시고자 하시는 그 원형의 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
나는 생명을 얻은 나이다.
언제고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
정말로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 보이는 나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그 생명을 얻은 자이다.
정말로 이것이 진정 나란 존재의 원래 값이다.
정말로 이것이 내가 나를 보며 무장해야 할 내 존재의 정체성이다.
나는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나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다 예비해 놓으신 그 풍성함을 담아가는 나이다.
그 풍성한 삶은 밝은 사람의 내면이다.
밝은 사람의 내면은 기쁨가득,사랑가득,감사가득한 존재이다.
이것이 가능함은 내 소욕을 정지하고 성령의 소욕을 쫓음으로 가능하다.
오늘 하루의 삶의 목표는 성령님의 인도따라 더 풍성한 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아들이 있는 것 같다.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그 정신을 담은 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아들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의 정신을 갖고
베드로처럼 한 번 가진 믿음은 끝까지 지켜나가는 굳건한 믿음의 정신을 갖고
이러한 것을 지켜나가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아들"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주님 저에게 거룩한 제사장의 정신과 베드로의 믿음의 정신을 주시옵소서.
귀한 깨달음으로 정돈하게 해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 2011년 성령님께서 저에게만 특별히 주시는 음성 *
" 행동해라." " 무조건 긍정해라."
2011년을 살면서 가장 크게 바꾸어야 하는 저의 내면의 주제인 것 같습니다.
더 풍성한 밝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령님의 코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