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속에 고요함을 찾으며
며칠 동안 비판과 정죄의 늪 속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머리가 계속 아파왔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탓 하기 시작했다.
성령님께서 " 이건 잘 못된 것이라고, 급 브레이크를 잡아 주셨다. "
비판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었다.
그 비판, 가만히 들여다 보면 " 나를 그렇게까지 비판하고 정죄하고 싶어서이다. "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을 잡아 주셨다.
" 진짜 행복은 내 안에 있다고 하셨다. "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면, 왠지 행복할 것 같지만,
정작 내 마음이 더 불쾌하고 더 악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님앞에 " 내 비판의 혀와 내 비판의 관점을 내려 놓았다. "
그리고 성령님께서 " 내 안의 문제점에 대해서만 집중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으면, "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
내 안에 고쳐야 될 수많은 들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올해 나의 과제였던 " 그 들보가 보였고 직면하게 되었다. "
" 다시 내 눈을 안으로 돌릴 수 있었고 성령님이 주시는 과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
성령님을 통해 " 주님의 평안이 다시 찾아왔다. "
긴장하고 불안했던 나의 마음들이 고요하기 시작했다.
내가 비판했던 3가지의 일들은 아직도 쓰나미처럼 문제투성이지만,
내 마음은 그것과 상관없이 쓰나미속에 고요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 설교를 들으면서, " 내 들보를 먼저 보고 내 들보를 먼저 빼라. " 의 하나님의 음성을 담았다.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실천하는 자가 바로 "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제자는 결국 " 내 안에 풍요를 먼저 만들어 가는 것이다. "
내 안에 진정한 행복으로 가득차 있지 않으면, " 너도 나처럼 " 의 말이 아예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삶의 환경들은 " 쓰나미처럼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
그런데 그 쓰나미들이 해결된다고 해도, " 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
내 진정한 행복은 "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안에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모든 자원을 가진 자이다.
지금이 그 자원되신 " 성부, 성자, 성령님 "을 맘껏 쓰면서 누릴 때이다.
진정한 자유,평화,행복은 " 성부, 성자, 성령님 "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맘껏 " 그분과 소통 할 것이다. "
맘껏 " 그분을 통해 내 안에 풍요를 만들어 갈 것이다. "
그리고 " 그 진정한 행복이 넘쳐서 내 옆의 사람들에게 말 할 수 밖에 없는 그 풍요로움이 자리하게 할 것이다. "
" 이것이 진정 주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만들어가시는 제자이기 떄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