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orean History Channel.- 독일 신부가 영상으로 기록한 '1925년의 조선'2
착한 남자, 그의 이름은 노르베르트 베버. 출생지 독일. 소속은 베네딕도 선교회.
▲1911년 조선 제1차 방문때의 베버 신부 일행(가운데 말 탄 사람이 베버신부)
베버 신부는 정말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사랑했었나보다. 그가 남긴 글 일부를 옮겨보자.
( * kbs스페셜 홈페이지 내용 일부를 옮겼음)
" 1911년에 내가 그리도 빨리 사랑에 빠졌던 한국과 이별할 때 작별의 아픈 마음으로 대한만세를
불렀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넘게 지나갔다.....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한국과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가져오게 되었다. "
▲ 1911년, 식사중인 베버신부 일행 (왼쪽 두 번째 베버신부)
베버 신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찾은 독일의 신부였다(1911년).
예술가, 문화 인류학자였던 그는 당시 4개월간 한국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의 문화와
삶을 400페이지가 넘는 글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후 베버 신부는 한국을 잊지 못하고
1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아 한국 문화에 대한 방대한 영상기록을 남긴다 (1925년).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1970년대 말, 독일 남부 뮌헨 근처의 한 수도원 지하실 공사 중
필름뭉치가 발견되었다. 15,000M분량의 35mm 필름은 한국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농업,수공업,
풍습, 명절, 예식 등을 자세히 기록한 한편의 영화였다. 그 영화의 제목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1920년대에 촬영 되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한 화질의 그 필름 전편이 <kbs스페셜>을 통해 2010년 2월21일 모습을 드러냈다.
▲ 1911년, 장죽(담뱃대)을 피우는 베버신부 일행 (오른쪽 끝 베버신부)
이 필름을 방송하게해준 독일 베네딕도회의 저작권을 존중해, kbs스페셜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개사진 3장만을 덧붙임을 양해바란다. 대신에 '다시보기'를 링크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이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보면서 종교적 시각을 개입시켜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베버신부와 그의 신앙에 대한 냉소는 일단 거두어주길바란다. 100년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100년전 필름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 뿐이니까...
그런 면에서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냉소와 폄하는 솔직히 좀 지나친 감이 있다. 아니 그런가??
2,Korean History Channel.- 독일 신부가 영상으로 기록한 '1925년의 조선'3
3,Korean History Channel.- 독일 신부가 영상으로 기록한 '1925년의 조선'4
4,Korean History Channel.- 독일 신부가 영상으로 기록한 '1925년의 조선'5
5,Korean History Channel.- 독일 신부가 영상으로 기록한 '1925년의 조선'6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베네딕트는 조선을 아름답게 보았다. 이영상은 건물 ,의복, 문화, 풍습으로 나뉘어 보았다.
왜 베네딕트는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 라고 했을까? 아마 서구화적이지 않고 전통을 이으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보고
고요한 아침 과 같은 나라 라고 했던 것 같다. 자연 친화적인 모습은 서울의 마을들이 산밑에 있고 그들의 밭은 넓은 땅에 있는 모습을 보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또한 베네틱트는 조선이 고급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예찬을 했다. 그이유는 독일 보다 먼저 발달된 활자 인쇄술과 덧셈 곱셈 나눗셈 뺄샘이 가능한 주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부분에서는 문화가 과학의 발전을 만든 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신분상승이나 자신의 성찰을 위해서 책을 밤낮으로 읽었다. 하지만 책을 찍는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서 더쉽고 빠르게 인쇄하는 방법으로 어떤 나라들보다 먼저 인쇄술이 발달 한것이다. 즉. 인류의 편리성과 필요성에 의해서 과학과 문화는 상호적 연관성을 가지며 발전하는 것 같다.
베버는 한국의 문화를 효라고 보았다.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보았을때 인사하고 아랫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윗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효는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쉬우며 사회가 균형화 되도록 한다. 그래서 효는 딱딱하고 억압된 분위기,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나라에서 또는 지역에서 발달이 잘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생각에는 효도 나라들만의 풍습에 의해서 많이 변이 되어서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아시아가 효에대에서 정석인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베버는 노동은 부의 원천이며 고귀함이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농경생활과 그것을 통한 공동체문화인 품앗이를 하고 있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베버가 당시 말했던 말과 이때의 우리의 농경생활은 문명의 발달과 땅의 지형,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당시 서구는 과학의 발전으로 문명이 한참 발달 했다. 의학이 발달하고 의식주가 발달 했다. 하지만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일자리는 부족했던 시대였다. 그랬기에 베버는 노동은 부의 원천이고 고귀하다'라고 말함으로써 노동 하자고 외치었던 거다. 그와 반대로
우리 조선은 아직 서구적 문명을 완전히 받아 들이지 않았던 상황이기 때문에 자연에서 만들어진 땅을 가지고 추수하며 1년을 보내고 땅에대해 감사하는 의미로써 물에대고 빌기도 했다. 즉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라마다 상황이 다름과 문명의 발달의 다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을 보고 자신의 주장하는 말을 곧바로 인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영상을 보면서 좋았던 점은 지금은 없는 조형물들이 살아 숨쉬고 있고 과거 100년전 그들의 삶 을 볼수 있었다. 5월5일 그네를 타는 여자 아이들 그리고 신발을 직접 만드는 모습들 도자기를 굽는 장소와 모습,그리고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이 인상적이 었다.
그중에서 장례식의 절차가 지금보다 까다로워 보였다.장례식중에 의례하는 방식은 당색(노론 소론)에 따라 다르다. 장례식을 하는데 온동네 사람들이 다같이 걱정해주고 같이 치루는 모습을 보고 농경을 하는데서보는 품앗이를 이 장면서도 볼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베네딕트는 이 장면을 어떻게 보았을까? 장례식은 조상 숭배 의식과 같다.서구의 장례식은 간단하며 간소 하다 또한 서구식 종교 (기독교, 천주교)에서는 조상숭배 가 금지 혹은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영상에서의 베네딕트는 문화의 이해로 (상대 주의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또한 인상적인 부분은 맹인이 주술사가 되어서 귀신을 내쫒는 모습이었다. 맹인같은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버려지거나 매몰되기 좋은 케이스이다. 지금이야 평등을 추구하는 시대로써 맹인들이 안마사로 직업을 가질수 있지만 과거 1960-1980년대 까지는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과거 100년전에 맹인들이 사회에서 직업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호기심 있게 봤던 장면은 우리 선조들이 질병이 일어나면 귀신으로 보았다. 이장면은 전에 보았던 코로와이족 부족이 살인을 일으킨 사람, 재해 를 보고 귀신으로 보았던 점이 비슷하다. 그것은 문화가 발달 하지 못해서 그런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