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JESUS
[스크랩] 록펠러 이야기 본문
록펠러 이야기
세계 최고의 부자요, 세계 최고의 석유왕이며 세계 최고의 자선가로 유명한 존 D.록펠러는 1839년 7월 8일 아버지 윌리엄 록펠러와 어머니 엘리사 데이비슨의 장남으로 뉴욕주 리치포드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10살 때까지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의 잘못으로 행복했던 가정은 어려움에 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경건한 기독교인으로 도덕과 예의범절에 엄격했고 어려운 가정에서도 열성적인 신앙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잘 양육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무절제한 낭비의 결과는 무자비한 가난뿐이다."라는 근검절약의 생활 철학을 남기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부를 축적하는데 성공한 사람에겐 돈의 위력을 깨우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게 마련인데 록펠러는 일곱 살 때 야생 칠면조 둥지에서 알을 가져다가 이것을 부화시켜 한 떼의 칠면조떼를 갖게 되었고, 3년을 저축해서 이웃집 농부에게 50달러를 7% 이자로 빌려줄 수 있게 되었다.
1년 뒤 원금과 함께 3달러 50센트의 이자를 받은 어린 록펠러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3달러 50센트는 그가 하루 열 시간씩 열흘은 감자를 캐야 받을 수 있을 만큼 거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나는 돈을 위해 일할 게 아니라,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고백했다.
록펠러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53세 때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억만 장자가 록펠러 혼자뿐이었으며, 일주일 수입이 1백만 달러나 되었다.
록펠러의 재산을 현 시세로 계산하면 빌게이츠가 가진 전 재산보다 3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록펠러의 성공비결 ; 10가지 삶의 지침]
록펠러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세계 최고의 부자로 성공하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록펠러는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받은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가능한 주일 예배 만큼은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이 말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가지고 필요하면 사용해야 함을 표현한 말이다.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시간이 필요하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안 된다.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허드슨 강변에...
그를 세계 최고의 갑부로 이끈 어머니의
"록펠러야! 네가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고 싶니? 세계에서 제일 멋진 교회를 하나 지어 하나님께 바쳐보아라 그러면 넌 진짜로 세계 제1의 부자가 될 것이다.
라는 유언에 (4982개의 교회를 더 지은 록펠러~~!)
어머니를 위해 세운 그 교회!
규모는 몰겠지만...꽤 아름다운 교회라 들었음
아이고 뭔가 허전하여 덧붙여야 겠군요 ^^
록펠러의 일생
아주 평범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었고 머리가 좋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근근히 학교공부를 따라갔습니다. 그의 가정도 부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 좋은 어머니를 가졌습니다. 그가 비록 평범한 아이였지만 그 어머니는 그를 기독교 신앙으로 잘 양육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에게 특별히 십일조 정신을 철저히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아예 주머니를 2개 만들어 주고는 오른 쪽 주머니에는 꼭 십일조를 챙겨 넣도록 했습니다.
10센트 짜리 은화가 하나 생기면 그것을 동전으로 바꾸어서 오른 쪽의 십일조 주머니에다 1센트를 꼭 챙겨 넣도록 교육시킨 것입니다. 그는 8세 때에 자기가 받은 돈 20센트에서 2센트를 뚝 떼어서 처음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뒤부터 그는 계속해서 십일조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반드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는 십일조뿐만 아니라 전도헌금도 드리고 구제헌금도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15세 때에 한 침례교회에서 침례를 받고는 그 교회에서 회계로 쭉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21세 되던 해에 한 사건이 터집니다.
그 당시 그가 다니던 교회 건물에 저당이 잡혀 있었는데 갑자기 그 저당권자가 돈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 회계로서 교회 재정을 맡고 있어서 그랬는지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배 후에 출입문에 서서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간곡하게 부탁을 합니다. "지금 교회가 어렵습니다. 교회를 위해 뭔가 해 주십시요." 그는 이렇게 몇 달 동안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적은 기부금들을 모아서 저당 잡혔던 교회를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 정말 돈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 돈을 벌어야 하겠구나."
그는 굳게 결심하고 자기 사업에 뛰어듭니다. 그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과 여기저기서 융통한 돈을 합쳐서 1800달러로 곡물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는 첫 사업에서 그런 대로 성공을 거둡니다. 그래서 25세 때에는 미국 클리블랜드에다 정유소를 하나 세웠습니다. 그 당시는 석유사업이 막 뜨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석유사업에 전심전력하게 됩니다. 그는 자나깨나 석유만 생각했습니다. 그의 옷은 항상 석유 냄새로 진동했습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에 석유 냄새 때문에 손님들한테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정유소는 그럭저럭 잘 운영돼 나갔습니다.
그는 광산업에도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그만 사기를 당해서 투자자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서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빚 독촉에 너무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자살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어서 그 황량한 폐광에 납작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살아 계신다는 그 증거를 보여 주십시요." 그는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그는 일어나 다시 폐광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파들어 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검은 덩어리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바로 석유였습니다. 그는 유전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는 32세 때에 자본금 100만 달러로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는 사세확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44세 되던 1882년에 미국 석유산업의 90%를 장악하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부자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의 사업 이야기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십일조 정신 때문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에는 정말로 하나님의 웅장한 약속이 딸려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어머님의 신앙색깔이 그 아들에게 그대로 전달된 한을 심어주었다.
여기서 배워야할 복음은 깊은 이해와, 자기의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다.
지은이 : 이채윤 출판사 : 미래사
판매가 : 정가 9,900원, 2006.3.25 발간, 초판16쇄 2007.8.30
책소개 : 록펠러는 인류가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한 이래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세계 최고의 부자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현재의 가치로 따져서 빌 게이츠의 3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독점하면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던 록펠러(John Davidson Rockefeller, 1839~1937)의 평전이다. 특히 이 책은 기독교인으로서의 록펠러에 주목하고 있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22:29)
록펠러가 기독교인으로서 성공을 거두게 된 배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독실한 어머니의 신앙교육에 전적으로 순종한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의 10가지 교훈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적어도 3대 이상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철저하게 하나님께 드렸다. 그는 평생동안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선사업을 쉬지 않았다. 그는 경건생활에 힘쓰고 세속적인 일을 멀리하였다. 그는 사업에 관해서 만큼은 누구 못지 않는 열정과 근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투자해야 할 가치가 확인되면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감당해 줄 수 있는 동역자들을 잘 활용하였다. 그는 날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만약 록펠러가 지금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그는 자신의 일터에 더욱 하나님의 임재를 초청하고 일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더 잘 활용했을 것이다. 또 일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서 진행해 나가도록 했을 것이다.
1. 록펠러 어머니의 교훈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보다 더 중요한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다.
3. 주일 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하여야 한다.
4. 십일조는 하나님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사용하여야 한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오늘 해야 할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모든 일에 함께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그리고 도와 준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안된다.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아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 어린시절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0-21)
록펠러의 아버지는 골드러시 바람을 타고 서부로 자주 여행을 떠나서 집안을 잘 돌보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이 냉혹하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 어머니는 록펠러가 6살 때부터 십일조를 가르쳤다. 용돈을 쥐어주고 그 용돈에서 십일조를 떼서 오른쪽 주머니에 넣게 했다. 그는 일기를 쓰듯 평생 철저히 회계장부를 썼고, ‘수입의 십분의 일 헌금’이라는 원칙을 지켰다. 최고의 부자가 된 후에는 십일조 전담부서에 40명의 직원을 두기까지 했다.
처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50달러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그 돈을 빌려주고 6개월 뒤 3달러 50센트의 이자를 받았다. 상한 콩을 싸게 사서 상한 콩을 골라낸 다음 비싼 값에 되팔기도 했다. 학창시절에는 교회일에 열심이어서 별명이 ‘집사님’이었다.
3.일찍 시작한 사업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16:9)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노무직을 거부하고 곡물위탁 판매회사의 경리로 일하게 된다. 그는 월급이 많지 않았지만 6시30분에 출근해서 저녁10시까지 일했다. 그는 사장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일했고 그로 말미암아 곡물위탁판매업의 생리를 잘 익혔다.
그는 3년후 클라크라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곡물위탁 회사를 차렸다. 각각 2000달러씩 투자했는데, 그동안 받은 월급이 800달러 밖에 없어서 아버지에게 나머지 금액을 10%이자로 빌렸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몇 번 록펠러에게 고리의 이자로 돈을 빌려주곤 하였다. 록펠러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겸손하게 하나님께 도움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록펠러는 직접 농장에 방문해서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으로 일을 하였고, 기회다 싶을 때는 무모해 보일 만큼 과감하게 투자했다. 회사는 급성장했고, 마침 남북전쟁이 터져서 물가가 치솟고, 군수물자의 주문이 쇄도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신용 평가가 높은 회사가 되었다.
록펠러는 19살에 교회에서 집사가 되었다. 그는 주일학교와 운영위원의 서기를 맡아보았다. 그는 교회 행정에 깊이 관여하고 많은 모금 운동에 열정적이었고, 한번 정한 목표를 위해서는 몰입해서 일했다.
당시는 석유가 발견되어 곳곳에 유전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록펠러는 정유업과 석유 유통업에 더 관심이 많아서 정유회사를 차렸다. 그때 엔드류스라는 화학을 독학한 사람과 동업하게 되었는데, 그는 정유업에 탁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석유사업의 미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에게 있어서 일이란 거의 종교적인 신성함마저 띠고 있었다.
4.일생을 바친 석유사업
록펠러는 25세경에 폐광을 사들여서 광산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속아서 산 광산이어서 석탄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파고 들어도 석탄은 나오지 않고 자금은 바닥이 나고 인부들은 폭도로 변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꿈으로 계시하시고 계속 파 내려갈 것을 지시하셨다. 그는 용기를 내고 인부들을 설득해서 계속 파 들어갔더니, 그곳에서 석유가 터져 나왔다.
회사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록펠러는 벌어들인 돈을 다시 석유사업에 투자했다. 그는 저장 탱크와 철도를 장악하고 남들보다 더 견고하지만 더 싼 석유통을 제작했다. 그는 석유에 관한 모든 것을 생각해 내고 생산과 정유,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연구하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는 모든 사람들 보다 항상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이제 석유는 등불을 밝히는데서 그치지 않고 모든 산업계에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변모하였다.
그는 최초의 주식회사, 중역회의, 한 산업의 모든 분야를 독점하는 기업을 만들었다. 그의 경영 방식은 전세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5. 록펠러 제국
브로드웨이 26번가는 스탠더드 오일의 본사가 이전한 곳이다. 여기서 이 회사는 세계적인 기업이 된다.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40개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중 14개 기업은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석유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록펠러는 새로운 유전을 닥치는대로 사들였고, 심지어 아주 질이 낮은 유전도 사들여 정유방식을 개선해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50대에 이르자 록펠러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과로로 인해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사소한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입원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정밀 조사 결과 1년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자 언론은 과연 그 많은 재산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그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에 대해 굳게 쥐고 있던 고삐를 천천히 놓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뛰어 왔을 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신앙 생활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는 죽으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건강을 돌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그의 건강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1899년 이후로 록펠러는 사업가가 아니라 자선사업가로 변모했다. 그는 55년을 쫓기면서 살았지만, 남은 인생은 행복하게 살았다. 그는 병원에서 입원비 문제로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몰래 도왔다. 그는 나중에 이 일을 회상하면서 ‘나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사회적으로도 석유사업의 독점에 대한 압력이 강해져서 록펠러는 세계 시장을 100%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접어야 했다. 대신에 그는 자선사업에 뛰어들면서 이 사업 또한 일반 사업 못지 않게 세심한 주의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선사업을 주관할 엄청난 규모의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1903년 일반교육위원회(GEB)를 창립하였다. 이를 통해서 수많은 대학과 학생들을 후원하게 되었다. 또 젊고 유능한 게이츠목사를 만나서 자선 사업의 전반적인 목적과 마스터 플랜을 구축하게 되었다. 록펠러 의학연구소, 록펠러 재단, 로라 스펠먼 록펠러 기념재단이 뒤이어 생겨났으며 록펠러가 은퇴한 다음에는 그의 아들이 이 자선사업을 이어가도록 했다.
1911년 미국 대법원은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해체를 결정했다. 회사는 34개의 개별회사로 해체되었고 주주들은 각자의 지분을 배당 받았다. 그러나 해체된 계열사들의 주식 가치는 5개월만에 4배로 늘어났다. 해체 당시 록펠러의 재산은 2억 달러였는데 곧 10억 달러를 넘어서고 말았다. 오히려 이런 현상은 록펠러에게는 위기가 되었다. 게이츠 목사는 더 빠른 속도로 재산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 후손들까지 재산에 치어 죽을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록펠러는 이제 돈 버는 일이 아닌 돈 쓰는 일로 바빠진 것이다. 그는 12개의 종합대학, 12개의 단과대학, 4928개의 교회를 지어 사회에 바쳤다.
록펠러 재단은 경제공항을 이겨내도록 록펠러센터를 세웠는데, 장장 10년의 공사기간을 거쳤다. 또 뉴욕시가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해서 뉴욕의 수도관을 자비로 묻어주어 뉴욕 시민들에게 평생 수도요금을 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했다. 록펠러의 후손들은 지난 100년간 미국 사회의 기업경영, 자선사업 분야 뿐만 아니라 예술, 정치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록펠러는 씨앗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며, 아무 곳에나 뿌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풍요로운 대지인 하늘에 뿌리는 것이라는 점을 인류에게 확연히 보여준 ‘첫사람’이 되었다.
‘내가 전세계 인류의 자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나는 남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기 시작한 뒤로 오히려 재산이 점점 불어나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10)
'사랑의 교회 > 학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존재는 문제없다. (0) | 2012.09.14 |
---|---|
[스크랩] 한 사람의 시작 - 전도 (0) | 2011.02.24 |
[스크랩] [퍼온 간증] 성철스님의 마지막 말 "산채로 지옥 불에 떨어지니" (0) | 2008.10.05 |
[스크랩]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 (0) | 2008.09.12 |
[스크랩] 고구마전도법핵심 (0) | 200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