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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의 회복"과 "선악과의 회복"을 풀고 본문

사랑의 교회/새가족섬김이

"생명나무의 회복"과 "선악과의 회복"을 풀고

KING JESUS 2011. 12. 1. 15:51

 

1. "스스로 있는 자" 를 직면하며.

 

"생명나무의 회복" 교재를 풀고

 

"유일한 유"에 대한 값에 대해서 절대성을 가지게 된다.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에 대한 본질의 값을 실제적으로 담는다.

 

솔직히 "유일한 유"에 대한 신앙을 하기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했다.

몽통그려서 희미하게 "하나님"을 불렀지,

실제 현장에서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를 찍고 보고 잡는 것은 약했다.

 

실제 기도할 때도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를 보고 기도하기 보다는

그냥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하나님을 몽통그려서 부르짖었다."

 

정말로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 본질의 값이신 "스스로 있는 자"를 보는 눈이 얼마나 정확해야 되는지 깨닫는다.

"주님"이라고 부를 때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를 정확하게 보고 부르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신앙을 확실한 정점을 찍고 풀어가야함을 깨닫는다.

이제는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를 직면하며 그 분앞에 기도한다.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를 찍고 신앙을 풀어가니 너무나 쉽고 그리고 깊게 보인다.

"그 유일한 유이신 하나님"이 가지신 그 존재의 본성이신 "전능성"도 쉽게 보이고 "사랑"도 쉽게 보인다.

 

"그 유일한 유로 계신 하나님" 먼저 보고

모든 유를 창조하신 그 분의 전능성을 보니

"그 유일한 유가 가지신 엄청난 파워"가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그 유일한 유로 계신 하나님" 먼저 보고

사랑으로 만드신 모든 만물,사랑의 예수님,사랑의 성령님을 보니

"그 유일한 유가 가지신 사랑의 용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인다.

 

"그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의 본성이 "전능성 FULL" "사랑 FULL" 이시기에

당연히 "복의 약속"을 꿈꾸시고 성취하신다.

당연히 "에덴동산"을 꿈꾸시고 성취하신다.

 

솔직히 예배드릴 때 "그 존재하심을 입체적으로 목사님께서 그려주시지만 실제 내 현장에서는 그렇게 적용하지 못했다."

그 입체성이 강화될 수록 내 현장에서 "그 유일한 유이신 생명나무"를 붙잡고 부르짖고 쓰게 된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깨닫는 이 놀라운 진리가 내 안에 깊게 깊게 실제적으로 각인된다.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실제 내 현장에서 입체적으로 보이고 "능력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2.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사랑을 심는 자.

 

"선악과의 회복" 교재를 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선을 먼저 추구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드리기 위해 힘쓴다.

 

마태복음 6:33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라는 말이 강하게 들린다.

"먼저 6대 존중의 선"을 확실히 보여주길 원하신다.

 

나는 "먼저"라는 개념이 약하다.

그리고 "심는다."라는 개념도 약하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나에게 예수님과 성령님을 주셔서 "생령"되게 하셨다.

"먼저 사랑을 내게 심으신 것이다."

 

하지만 난 "먼저 하나님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기준과 환경에 "먼저 사랑을 줄 때가 있다."

 

이것이 정말로 잘 못 되었음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랑의 뜨거운 마음과 심으심을 내게 주셨는데,

난 먼저 존중의 선을 두기 보다는 "내 기준에 맞는 선(실제 악)"을 추구하고 있다.

 

오늘 이 시간 성령님을 통해 "먼저 존중의 선"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강력히 내 안에 깔아간다.

내 취미,내 직장,내 아내,내 결혼,내 가정,내 친척,내 어떤 것 보다 더 "먼저 주님을 사랑하자."는 정신을 갖는다.

 

그리고 나는 "심는다."라는 개념이 약하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인 예배,연보,말씀,기도,전도를 심어가는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

 

이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정신"이 약하기에

그것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6대 존중의 실천이 많이 빈약함을 깨닫는다.

 

갈라디아서 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 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심어가는 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 분에게 먼저 사랑을 받았지 않은가?"

"그 분에게 먼저 사랑을 받았기에 내 어떤 것 보다 더 먼저 사랑을 주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가?"

 

정말로 나는 못된 놈이다.

하나님께서 목숨바쳐서까지 주신 그 사랑에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나?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내 사랑의 정신"이 문제다.

내 사랑의 정신의 우선순위가 뭐란 말인가?

 

"먼저" 라는 단어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먼저" 라는 절대 기준점을 가지는 것이 이렇게 중요할 줄 몰랐다.

 

그냥 교회가니깐 교회가고 그냥 공연준비하깐 공연준비하는 습관의 인간이였다.

"먼저 만의 만의 사랑을 받은 자로써 나도 어떤 것보다 더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정신을 백의 백이라도 가져야 함을 깨닫는다."

 

내 안에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정신"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어쩔 수 없이 벌 받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동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하기에 나오는 행동들인 6대 존중이 나온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당연히 열정을 불태우고 친밀감을 가지고 헌신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들이다."

 

성령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진리의 큰 원칙들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큰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