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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은집사님을 만나고.^^ 본문

사랑의 교회/새가족섬김이

종은집사님을 만나고.^^

KING JESUS 2013. 1. 12. 00:44

종은집사님을 만나고 그리고 기도회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3가지가 정돈되어진다.

 

1. " 하나님의 꿈 " 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다.

나는 내 속에 " 하나님이라는 절대 축 " 이 세워져 있다.

누구보다 강력하게 " 그 분앞에 엎드림 " 에 놓여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 그 분의 가진 꿈 " 에 대한 자리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터가 천국본향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 설정이 이 땅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였다.

 

내 앞에 살아계신 그 분이 가진 단 하나의 꿈은 " 천국 " 밖에 없다.

이 땅은 아예 꿈꾸지도 않으셨다.

 

내가 지금 발로 서 있는 이 곳은 내가 거할 땅도 아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땅이다.

 

하나님이 원래 꿈꾸었던 그 땅은 " 천국 " 밖에 없다.

하나님의 관심은 " 천국 "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단 하나의 꿈만 꾸신 " 그 천국 " 을

이 땅에 사는 " 나에게 회복시켜 주시고자 한다. "

 

하나님의 꿈앞에 " 난 창세전부터 그 곳에서만 예정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는 하나님의 원래 꿈꾸셨던 " 그 천국의 본향이 회복된 자이다. "

 

오직 예수님으로 말이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 원래 내 고향 내 천국이 회복된 자가 되었다. "

 

그 천국의 본향이 회복된 자로써,

원래 내가 거해야 될 그 천국의 상급을 위해서 오늘의 삶을 산다.

 

수요예배 때는 상급의 자리가 뭔지도 몰랐다.

" 하나님의 꿈이라는 축에서 모든 것이 풀려지는 느낌이 든다. "

 

저 천국의 본향이 회복된 자로써,

천국의 상급을 쌓기 위해 오늘의 현장을 평안,기쁨,사랑,충성의 열매 맺기를 몸부림친다.

 

예전에는 이 땅의 사람으로써 천국도 가고 평안,기쁨,사랑,충성을 누려야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 하나님의 절대 꿈 ~ 하나님의 절대 심보에 대해서 명확하게 담게 되는 것 같다. "

 

2. " 복음을 바라보는 나의 시작점 "

나는 복음을 내게 적용하면서 사는 것이 매우 강한 편이다.

복음이 내 간증처럼 내 피부처럼 적용하면서 산다.

 

2011년 9월 성령님에 의해 내 모든 과거가 치료되고 나서,

나는 복음을 " 반에 입장에서 정을 보고 있었다. "

 

금화님,정숙님을 볼 때에도 " 상처라는 관점에서 복음이라는 전체 틀을 대하고 있었다. "

종은 쌤이 이 부분을 지적할 때 눈이 번쩍 뜨는 느낌이 들었다.

 

복음이라는 " 명확한 정 " 을 가진 자로,

그 사람 속에 자리하는 과거의 반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마치, 명확한 진리를 아는 자로 그 거짓을 대하는 것과

먼저 거짓을 보고 명확한 진리를 찾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복음의 명확한 진리의 큰 테두리 안에서

[ 생명 절대축]

[그 유일한 생명의 유일한 꿈 천국]

[ 이 땅에 사는 나에게 그 천국의 본향을 회복]

[ 이 꿈의 유일한 길인 예수님 ]

[ 그 예수님을 통해 그 천국의 내 본향이 회복된 나 ]

[ 그 천국본향의 나로써 천국상급을 위해 천국의 현장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 가는 삶 ]

 

이 기준점에서 " 이 땅에 사는 금화님,정숙님 " 을 바라보아야겠다.

이 진리의 축을 먼저 확실히 세우고 나서 " 금화님,정숙님,효선님의 아픈 과거 " 를 보아야겠다.

 

3. 영원한 친구의 자리.

나는 금화님을 대할 때 " 영원한 친구 "로 대하지 않고

그냥 손님의 자리로 금화님을 대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사님의 " 로라 - 셜리반 - 헬렌켈러 " 의 말씀을 듣고

아 ~ 정말 이들은 " 정말로 끝까지 영원한 친구 " 가 되어주었구나.

 

나는 지금 " 금화님이 바뀌고 싶어하는 변화의지가 아예 없다는 것을 알고 "

" 그만 포기할려고 했는데 말이다. "

 

금화님의 지금 심보는 " 진짜 가만히 있고 싶어 한다. "

성령님은 그런 금화님을 만나지 말라고만 했지 포기하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일반 사람들도 " 변화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잘 없다. "

목사님의 말씀처럼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미친듯이 외치는 그 자가 잘 없다. "

 

나는 " 그 사람이 변화의지가 없다고 아예 관계를 끊어 버릴려고 했다. "

하지만 성령님은 " 그가 스스로 변화의지를 가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다. "

 

사람을 대할 때 " 영원한 친구 " 의 자리처럼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 스스로 간절히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도해본다.

예수님은 나 같이 무지한 자를 35년동안 기다리셨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