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KING OF KING JESUS^^*/특별한 나 (137)
KING JESUS
하나님께서는 작년부터 자기부인훈련을 하게 하셨다. " 나는 날마다 죽노라 " 아멘. 얼마나 내가 주인되어 살려고 발버둥치는지 얼마나 내가 왕되어 이 겉사람의 인생을 욕심과 욕망덩어리로 살려고 하는지 말이다. 이 겉사람의 인생을 살아야지만 내가 뭔가 의미있고 커다란 업적을 남기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이 겉사람을 보면서 내 밑바닥의 욕심과 욕망이 얼마나 강하게 자리하는지도 보게 된다. 더 탁월해지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성공해서 주와 교회에 충성하고 연보하고 싶은데 말이다. 이것이 " 하나님 사랑 " 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생애 유일한 가치라면 " 하나님을 사랑하리라. " 이다. 고등학교때부터 누구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으셨는데 주를 만나고부터 이 마음이 점점 생겼던 것 같다. 하나님을..
일주일간 겉사람과의 대 혈투가 있었다. 얼마나 육신으로는 겉사람을 따를려고 하는지ㅜㅜ 정말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 내 마음의 법으로는 속사람을 따를려고 하고 내 육신으로는 겉사람의 욕심을 꽈악 붙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이 세상 신에 의해서 내 겉사람의 심보가 " 그 욕심들로 가득차 있었는지 말이다. " 이 세상풍속을 쫓을 수 밖에 없는 " 그 환경과 그 사람들로 얼마나 강력한 유혹이 자리하는지 말이다. " 밤낮을 설칠만큼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러면 그럴수록 " 성령님은 너 겉사람 십자가에 목 박아라. 너 죽어라 " 강력히 말씀해 주셨다. 얼마나 " 내가 주인인 것을 날마다 죽는 것이 중요한지를 " 경험한다. 얼마나 " 내 겉사람의 그 욕심과 욕망들을 그 ..
예배후 목사님의 그 짧은 만남은 내 머리가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 속사람 " 목사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 " 하나님 속에 감춰진 그 비밀로 들렸다. " 왜 이것을 보면서 미래의 교회가 보이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미래의 교회는 " 속사람 " 이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이 에베소서편지를 통해서 에베소교회에 강력히 선포한다. " 너희들 주 예수 믿고 주 예수 전파해 " " 너희들 주께 열정을 다해 헌신하고 연보해서 세계적인 교회 만들어 " 사도바울은 " 사역해라, 연보해라, 교회 세워라 "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교회는 이것을 하는 것에 목숨바쳤고 그것을 이룬 목회자는 실패했다 한다. " 속사람 " "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
에베소서 3장의 사도바울의 기도는 너무나도 깊다. 하나님의 속에 감춰진 비밀처럼 " 그 속사람과 그리스도를 구한다. " 이것이 사도바울의 인생이며 그 깊고 깊은 중심임을 담게 하신다. 목사님의 발자취 또한 이 길을 걷고 계심을 보게 하신다. " 나는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요청드리고 있는가 "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 했거늘 하나님과 성공을 같이 보고 있다. 사도바울의 기도를 묵상하면서 나의 기도와 사도바울의 기도가 얼마나 너무나도 이질적인가를 보게 하신다. " 정말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진정 기도드려야 하는가 " 말이다. 그것이 진정 " 내 인생 " 이요. 내 진정한 " 중심 " 일찐데 말이다. "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하옵시고 " 얼마나 위대한 요청 중에..
" 그래도 나는 뭐가 있겠지 " 이런 의식에 점령되었던 나를 부숴주신다. " 현구야 넌 아무것도 아니다. " 이 하나님의 음성이 가슴에 꽂힌다. " 그래도 내가 뭐가 있지 않겠어 " 라는 " 내 행위, 내가 주인됨 " 이 얼마나 악한지요. 수술대에 벌거벗은 몸으로 치료를 받으며 그리고 이 사업과 이젠 안녕을 고하며 이런 환난을 통해 " 내가 깨달아야 할 가장 큰 깨달음은 뭔지요? 주님 " " 현구야, 넌 아무것도 아니다. " 아멘. 나는 날마다 십자가에 죽겠습니다. 나는 주인이 아닙니다. 라고 고백만 할게 아니라 " 진짜 넌 아무것도 아니다. " 이 음성이 가슴 뜨겁게 다가온다. 얼마나 " 그래도 난 뭐가 있지 그것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어 " 얼마나 " 그래도 내 속에 뭔가가 있지 않겠어 " 라는..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신다고 그런데 이것이 너무나 관념적인 것에 치우쳐 그 사랑을 보지 못 하고 그 사랑에 집중하지 못 하고 행위에 집중하는 실수를 범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또한 문맥으로 믿고 마음으로 믿을 뿐 그 감동과 감격에 in 되는 것이 약함을 본다. 에베소서 2장의 설교와 이 주옥같은 말씀은 이제 " 내 심장에 꽉 박혀 버릴만큼 너무나 큰 감동과 감격으로 선물해 주신다. " 아마 " 나는 날마다 죽노라 " 나는 주인이 아닙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내 관점이 아니라 주인의 관점에서 이 성경을 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사도바울은 어찌 이러한 놀라운 세계를 펼치고 쓸수 있을까 나의 하나님은 긍휼이 풍..
주일설교를 듣고 성령님의 터치로 깊게 묵상되는 주제는 " 나는 왜 사는가 " 이다.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겠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 주 앞에 난 날마다 죽는다. 그 죽는 나는 누구며 !!! 그 죽는 나는 왜 사는가 말이다. !!! 에베소서의 1장의 말씀은 그 해답이 나오며 사도바울의 기도에는 그 명확한 답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날마다 죽지 않으면 그냥 이 땅의 나가 산다. 세상의 짐과 환란을 혼자 이고 혼자 힘들어하는 그 나가 산다. 자기 직업에 포로되고 눌리고 눈먼 그 나가 살고 이 세상의 성공,탁월함,우수한 나로 포장하며 그 세상의 것들로 나를 채울려고 한다. 주일설교를 묵상 중에 주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 현구야, 내가 곧 길이다. 내가 곧 진리다. 내가 ..
에베소서 주일설교를 듣고 내 심비에 담게 되는 것은 " 속량받은 자 " 이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난 속량받은 자이다. 난 거룩하고 흠 없는 자이다. "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정체성을 더 담게 은혜를 주신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나의 존재값인지 모른다. 모태신앙인 나는 늘 의로운 사람이 목표였던 것 같다. 도덕군자, 의로운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늘 내 뇌속에 각인될 정도로 설교를 들었던 것 같다. 너 믿는 사람이니깐 그거 하면안돼, 너 믿는 사람이 왜 그러니 너 그렇게 해서 천국가겠니, 너 빨리 너를 부셔서 의롭고 의로운 사람 되어야지 이 온갖 사단의 음성이 날 예수로 만들었고 이것이 신앙의 최종목표인양 살아왔던 것 같다. 또한 내 성격 또한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1월달부터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매일 1장씩 큐티를 시작하고 있다. 큐티 핵심말씀만 기억하고 정돈하지는 않았는데 매일 정돈할려고 노력해 보아야게다. " 보라 나의 택한 종 " 마태복음 11장 이 말씀이 내 심비에 새기게끔 해주신다. 어제 주일설교말씀의 " 나는 오직 주 예수로 말미암아 창세전 하나님의 선택된 자다. " 누군가에게 선택받았다는 것은 뭔가 모르게 뿌듯함과 자신감이 생기게 한다. " 선택 " 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값진 줄 몰랐다. 주께서 창세전 주 예수로 말미암아 날 선택하셨다니 말이다. 정말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다. 이 하찮은 이 티끌과 같은 나인데 말이다. 주께서 보시는 나는 " 오직 주 예수안에 선택된 나다. 오직 주 품에 거룩하고 흠없는나다. 오직 주 예수가 있는 나다. " 오늘 큐티말씀은..
주일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앞에 서게 되었다. " 너 가만히 있어라. 하나님의 기적을 보라 " 늘 알던 말씀이였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앞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 현구 너 가만히 있어라. 나의 기적을 봐라 " 아멘. 난 얼마나 내가 주인인 채 얼마나 살고 있는지 말이다. 정말로 나의 뇌가 꼭 치매걸린 것 처럼 " 사단의 의해 내가 왕 의식이 당연하게 돌아간다. " 얼마나 많이 성령님앞에서 깨어서 기도하게 되는지 말이다. 순식간에 왕이 되고 근심하고 신경질내고 순식간에 내가 왕에 쩔어서 사니 말이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그때마다 회개하며 " 나는 날마다 죽겠습니다. 나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께서 온전히 저의 주인이십니다. " 고백하게 도와주신다. 주여~ 인도하소서 ~ 이 기도가 절로 나오게 된다...